신은 매력적인 크리에이터이었다.
그는 내가 정말로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그는 스스로가 게으른 사람이라고 자주 이야기했었다.
그래서 그는 사람 만나는 것을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피하려고 했고, 자신의 일상이 방해받는 것을 누구보다 꺼려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끊임없이 콘텐츠를 만들어냈고, 마침내 게으르게 살면서도, 사람들은 그를 성실하다고 느낄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냈다.
나는 그게 정말로 부러웠던것 같다.
그가 만들어낸 시스템이 단순히 그게 너무 부러웠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 역시 콘텐츠 제작에 힘을 부은채 지난 몇 개월을 열심히 만들었다.
당연히 큰 성과는 없었고, 조금은 지쳐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신이 첫 번째로 내게 준 미션은 그런 점에서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나의 핵심질문이 무엇인지, 나는 잘 생각하지 않았었다.
무언가에 꽂힌다는 것이 참으로 위험한 일인 줄 잘 알면서도,
나는 무언가에 꽂히고 버리는 행위를 반복하고 있었다.
누군가의 매력적인 답이 내 인생에서도 그렇게 빛날 수 없음을 알면서도 어쩌면
나는 그게 너무나도 갖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살아왔었기에, 그가 주장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핵심질문을 고민하면서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나에게는 질문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엄청 부족하다는 사실,
그 처절함을 느끼는 잔혹한 시간뿐이었다.
그게 신과의 두 번째 만남이 유독 무겁게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했다.
생각을 좀 해보셨습니까?
신은 내게 당찬 얼굴로 물어보았다. 무엇을 호기롭게 보는 신의 눈에는 특이한 냉철함의 향기가 느껴졌다.
“아니요. 노력은 했지만 인생에서 제 핵심질문이 무엇인지 참 어렵더라구요.
대충 저의 질문을 잡아보기는 했습니다만..”
“그게 뭔가요?”
신은 나를 바라보며 이야기 했다.
“나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가..? 뭐 이런거 아닐까?”
“그럼 그게 사업을 유지하고 계시는 이유가 맞나요?”
“아니 그건 또 아닌것 같고..”
끝말을 흘리는 나를 보며 신은 알수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좋아요. 좋습니다. 처음부터 앞서나갈 수는 없는 법이니깐.
그리고 가만히 생각에 빠져있다가 이내 조근조근 이야기를 이어갔다.
“하나씩 천천히 합시다. 아주 작은 것부터 말이죠.
콘텐츠를 만드는 것은 정말 중요한 것이지요.
그런데 자유리. 이건 꼭 기억해야 해요.
자유리가 지금 만드는 콘텐츠말이죠.
사실 지나고 나면, 큰 의미가 없을거에요.”
“말 그대로 흑역사를 만들어나가는 꼴이 될겁니다.”
지금 만드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지금 내 고생이 고작 흑역사?
마음의 요동이 일어남을 느낀다. 그 마음이 역동이 되어 그에게 급하게 되물었다.
“지금 만드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고요?”
“네 말 그대로 별로 의미가 없을거에요.”
표정 변화 없이 즉각적인 그의 대답에 순간 나는 또 욱한 마음이 생겼다. 나도 내 나름의 전문 분야를 이룬 사람인데, 내가 만든게 의미가 없다니 아니 흑역사를 만든다니.. 거슬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신은 나의 이런 행동을 예측이나 한듯 편안하게 말을 이어갔다.
“만드는 것은 무조건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만들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스스로에게 질문이 나오면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면, 그게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까요?”
그는 계속해서 내게 말했다.
“나에 대해서 먼저 알아야 합니다. 안 그러면 이랬다 저랬다를 반복할 뿐일 겁니다.”
“그래서 제가 계속 자유리에게 질문을 드리는 겁니다.”
자유리는 어렸을 때 어떤 아이였나요?
뭐할 때가 가장 재밌었고,
뭐에 그렇게 집중했었나요? “
콘텐츠와 연관없는 질문을 물어보는 그의 의도가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나는 퉁명스러운 마음이 자꾸 올라왔다.
나는 대충 얼버무리듯 대답을 했다.
“저는 뭐 애들 꼬셔서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아이였어요.”
신은 웃으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그래요. 자유리 답군요. 그러면 그때 왜 애들을 꼬실려고 했을까요?”
깊게 들어오는 그의 날카로운 질문에 나는 이내 대답을 하지 못했다.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네요.”
반항적인 마음으로 무심코 나온 말에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하지만 나는 용기를 내어 신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어린 시절의 내가 느꼇을 즐거운 일들을 생각해보세요. 내가 어떤 아이였고,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사람들은 콘텐츠의 방향과 가치를 찾기위해 누군가가 하는 방법이나 조회수 올리는 성급한 성과에만 집착을 합니다. 정작 자신에게 힌트가 되어주는 것들을 돌아보지는 않으면서 맹목적으로 쫒아만 가는것이죠. 그러니 결국 지속적인 콘텐츠 제작이 안되는겁니다.”
힘을 주어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 묵직한 확신이 느껴졌다.
“자유리만 봐도 그렇지 않나요? 본인이 어릴 때 좋아했던 거, 잘했던 것들은 떠올릴려고 하질 않잖아요. 질문을 안 하는 습관은 그렇게 형성되는 겁니다. 과거와 단절되어 살면서 답만 쫒아간다면 더 이상 질문은 생기지 않아요. 그래서 나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야되어요. 쉽게 생각하면 쉽게 되듯이.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계속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안 하는 것은 왜 안 하는지. 이런 연관성만 그려보아도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조금은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요??”
순간 생각이 멍해졌다. 나는 신과 대화할 때 문득문득 그가 객관적으로 보일 때가 있었다. 날카로운 그의 말에 익숙하지 않은 그의 표정이 어울러 볼 때가 있었다. 지금이 딱 그럴 때였다.
“정 스스로 찾기가 어려우면, 친적이나 주변분들에게 물어도 볼 수 있을거에요. 나는 어떻게 자랐고, 어떤 것을 좋아했고, 무엇을 할 때 화를 냈고, 싫어했는지. 이런것만 정리해봐도 지금 콘텐츠에 큰 힌트가 될 수 있을거에요.”
그랬다. 나는 20살 이후로 아니 정확하게 내 키가 엄마의 키를 따라잡으면서 나의 어린아이를 내게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나를 지우기에 급급했다. 포장해야했고, 나아가야만 했다. 그래서 나에게 과거는 하나의 사치일 뿐이었다.
나는 가만히 나의 어린시절을 생각해보았다.
나는 어릴 때, 장난감을 유독 집착했었다. 그것을 얻기 위해서 나는 무슨 행동도 했었다. 부모님은 내가 공대에 갈 줄 알았다고 했다. 장난감 조립을 너무 좋아해서, 커서 그대로 공학자가 될거라 생각하셨단다. 그러나 아니었다. 나는 조립을 좋아하는게 아니고, 무언가에 미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린 시절은 이렇듯 나에게 많은 힌트를 주었다. 관계를 중시하는 내 성향도, 집착과 끈기로 신념을 만들어내는 나의 중심도, 설득을 잘하던 나의 장점도 어린 시절의 나는 내게 해답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게 제가 드리는 두 번째 미션입니다. 콘텐츠를 만드는 것은 무조건 1순위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가치관이 명확하지 않으면, 만드는 모든 것들에 대한 기대는 부숴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흑역사라고 하신거군요.”
“네. 그런 흑역사 저도 많이 가지고 있으니깐요. 진짜 내 콘텐츠를 만들기위해선 흑역사 50개는 기본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완벽할 줄 알았던 그에게도 콘텐츠에 흑역사가 있었다는 말이 쉽게 믿기지 않았다.
신이 떠난 뒤, 나는 사무실에 홀로 앉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유독 파란 하늘에 구름 한조각이 엄마의 모습처럼 보였다.
엄마는 슬픈 미소를 지으며 나를 향해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하늘이 파랗지만, 반대로 내 마음은 퍼래져갔다.
그와의 3번째 만남이 더 간절히 기다려지는 이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