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보다 콘텐츠가 먼저다.
신과의 계속된 만남으로 콘텐츠에 대해 조금씩은 알아가던 어느 겨울날.
나는 내가 하는 생각을 담은 책을 출판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생각은 꼬리를 물어 나는 불현듯 출판을 이룬 그날을 떠올리며 기분좋은 상상에 빠져본다.
번쩍이는 출간 설명회에 마이크를 쥐고, 수 백명의 사람들 앞에서 출간회를 갖는다.
사람들은 모두 빛나는 나의 얼굴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고, 나는 그 다음의 책의 내용을 어필한다.
아주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나의 말한마디 한마디를 청중은 집중하고 있다.
꽉조여온 넥타이가 조금 불편하기는 하지만, 상관은 없다.
수백여명이 바라보는 앞이기에 나의 감각은 이미 무뎌질때로 무뎌져 있기 때문이다.
마이크로 울려퍼지는 청명한 소음을 제거하고, 어느덧 사인을 받기위해 줄이 서있다.
이 들이 내 책을 읽고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접촉하게 된다면, 그들은 더 많이 나에게 관심이 생길 것이다.
포털사이트에서 내 책은 이미 핫한 상태이다. 출판분야의 1위 베스트 셀러 책으로 뽑히고, 출판업계를 뒤집어 버리는 따끈따끈한 신간서적 한가운데에 내 책은 아주 오랫동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몇쇄까지 출판이 가능할까?
내 사진을 표지에 넣어야 될까? 말아야 될까?
그래. 내 얼굴이 유명해지면 나는 집 앞의 마트조차 나가기 힘들수있어. 그러기는 싫다
책을 낸다는 기분좋은 상상에 힘입어 나는 이런 고민을 하고 있었다.
책을 낸다는 것은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여러모로 좋은 의미를 지녀보았다.
언제든 나는 책을 통해서 세상에 메시지를 줄 수 있다.
책을 소유할 경우, 나는 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진다.
꽤 유명한 작가의 경우 직접적인 인세만 해도 적지가 않을 것이다.
책의 메시지는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설명하지 못하는 깊은 부분을 자극하게 한다.
쓰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지금의 마음을 숨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신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졌다.
“신. 기쁜 소식이 있어요.
제가 책을 좀 내려고 합니다.
아무래도 콘텐츠의 꽃은 글과 영상인데,
책을 낸다면 정말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들어서요.”
결단을 내리고 확신의 찬 내 눈을 바라보며, 신은 내 예상과 달리 알수없는 눈빛을 보냈다.
그리고 이내 그는 나를 향해 냉철한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다.
“자유리. 책을 내면, 어떤점이 바뀔 것 같아요?”
“사람들이 저를 좀 알아볼 수 있지 않을까요? 싸인회를 열수도 있고, 홍보도 하고, 뭐 여러가지로 좋을 것 같은데요”
“그럼 자유리. 만약 정성껏 책을 냈는데,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상황이 오면 어떻게 하실건가요?”
“그래도.. 정성껏 책을 냈는데. 정말 아무일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신은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내게 질문을 이어갔다.
“자유리 책이 나오고 판매대에 노출되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줄 아나요?”
“글쎄요 저는 잘 모릅니다만..”
“5일-1주일입니다. 그것도 어떤 경우에는 더 짧게 회전하기도 합니다.”
“수천만원을 들인 책인데..그렇게나 짧다구요?”
“네. 하루에 출판되는 책만 해도 어마어마 합니다. 문제는 내 책이 판매대에서 빠져나가는 순간. 내 책은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완전히 멀어집니다. 서재에 꽂힌 책은 사람들이 실제로 구매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사실상 몇일안에 모든 것이 결정됩니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생명을 이어갈지, 아닐지는 말입니다.
그런 책들이 한해에도 수천권씩 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자유리, 판매는 그렇다칩시다. 출판업에서는 왜 자유리의 책을 선정해야 할까요?
글을 잘써서? 소재가 너무 신선해서?..”
“출판업이 그런 부분을 희망하지 않을까요?”
“그렇군요. 그럼 좀 더 현실적인 질문을 드리죠. 자유리는 지금 본인이 쓰고 있는글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읽고 있나요?”
“음… 다양한 곳에서 한 100여명..이 안되는 군요..”
사실이었다. 그때 내가 올리는 글들은 사실 그렇게 많은 인원들이 보고 있지 않았다.
신은 냉철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마 지금 출판을 진행하면 자유리의 책 판매는 100여권이 넘지않을 것입니다.
자유리. 엄청난 천지개벽같은 일이 그려지는 모든 것을 경계하세요.
대부분이 전부 허상입니다. 책을 낸다고 내 인생은 그렇게 크게 바뀌지 않습니다.”
신은 목소리에 힘을 주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신께서도 책을 여러권 출판하지 않으셨나요?”
“네 맞아요. 하지만 저는 첫 책을 출판할때도 이미 많은 팬을 확보한 상태였습니다. 지속적인 콘텐츠 제작을 통해서 저에게 관심있는 분들을 모을 수 있었고, 출판사 역시 저의 팬층을 보면서 안정적인 계약을 체결해주셨습니다. 자유리. 저는 그런의미에서 자유리가 책을 내는 것에 있어서는 1도 조급함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때가 된 분들이 책을 도전한다는 일은 너무나도 중요한 부분입니다. 하지만 정식출판을 먼저 염두해두고 글을 쓰게 된다는 것은 초보 작가들에게 많은 면에서 불리한 점이 생깁니다.”
“불리한점이요?”
“네 불리하죠. 정식출판을 위해서 수백군데에 정성껏 적은 원고를 보냅니다. 하지만 반응이 오는 곳은 사실상 거의 없죠. 100군데 쓰면 1곳 올까말까..정도.. 이유는 간단합니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 때문이죠. 이런 방식으로 책을 내기 위해 투고하는 분들이 엄청나게 많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책을 내기위해 나는 내 정성이 담긴 책을 갖고 엄청난 불리함을 감수해야 합니다. 스스로가 갑이 아닌 을이 되는 선택을 하는 꼴이 되는 것이지요.”
“그럼 콘텐츠를 만든다는 것이 갑이 될 수 있다는 것인가요?”
신은 이제서야 빙그레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네. 저는 다시 돌아가도 책보다는 콘텐츠를 먼저 쌓을 것입니다. 하나하나 쌓아올린 콘텐츠는 구독하는 사람들에게 평가받기가 쉽습니다. 저는 이렇듯 시장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반응을 확인 할 수 있지요. 그 뿐만이 아닙니다. 쌓여진 콘텐츠를 통해 관심을 가진 팬층에게 책 출판 과정을 언제든 안내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출판하시는 분들은 내가 쌓아올린 채널과 팬층을 보면서 출판제의를 먼저 하기도 하지요. 그들 입장에서는 가장 중요한 책의 수요가 확보 되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죠.”
나는 문득 생긴 궁금증을 쏟아내듯 물어보았다.
“그런데 책을 콘텐츠로 만들다보면, 제 책의 내용 대부분의 노출되는 것은 아닌가요?”
“자유리. 그것이야말로 진짜 축하해야 할 일입니다. 내 글이 많은 이들에게 노출이 된다면 정말 감사해야 할일 아닌가요? 누군가가 내 책을 봐준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그런 글이 바로 살아있는 글입니다. 그리고 재밌는 사실은 사람들은 노출된 콘텐츠가 책으로 구성되어 나와도 디지털로 잡혀진 글과 손으로 잡히는 아날로그의 글귀를 잘 구분하지 못합니다. 초기에 콘텐츠를 만드는 분들은 이런 오해를 많이 합니다. 내 책이 너무 유명해질것 같은 느낌.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말이죠. 저는 여러권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지만, 아쉽게도(?) 여전히 저는 대중목욕탕을 너무 손쉽게 다니고 있습니다. “
“그래서 책보다 콘텐츠가 먼저라고 이야기하시는 거군요.”
“맞아요. 자유리. 책보다 콘텐츠가 먼저입니다. 아주 짧게라도 지속적으로 글을 쓰시고 시장의 반응을 살피세요. 그것들이 계속 쌓여서 나중에 공유와 반응이 좋은 글을 모으면 정말 양질의 책 한권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
“네. 신의 이야기를 들으니 제가 정말 착각한것 같습니다. 책을 내면 무언가가 크게 달라질거라 생각했던것 같아요. 하나하나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우선인데 말이죠. 정말 매번 가르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신이 떠난뒤 나는 한참을 생각에 잠겨있었다.
나는 어쩌면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출판이라는 막연한 허상을 통해, 나는 어쩌면 지금 내가 만들어가야 할 콘텐츠의 기본 단계를 뛰어넘고 싶은 것 같았다. 이제 신을 만나고 느껴지는 지금의 창백한 기운이 익숙해지는 느낌이 든다.
나는 이제 조금은 알아가는 것 같다. 이런 느낌이 바로 나를 성장하는 느낌이라는것을 말이다.
다시 상상해본다. 내가 만약 지금 출판작업을 위해서 글을 쓰고 있는 중이라면, 투고과정에 얼마나 많은 출판업자들이 내 글을 가볍게 여길지를 그려본다. 그러다 이내 불편한 마음이 들어, 눈을 지끈 감는다.
그리고 나는 다시 컴퓨터를 열었다.
그래. 나는 오늘도 현장의 반응을 보고, 살아있는 경험을 쌓기위해 콘텐츠를 만든다.
아니다. 나는 어쩌면 콘텐츠가 아니라 더 단단한 미래를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