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만나던 어느 더웠던 그 해 여름날.
나는 신에게 떼쓰는 아이처럼 매달리며 완성한 때묻은 수첩을 다시금 꺼내본다.
그를 만나 익숙하지않은 일을 도전하면서 그 과정에서 찌질해지는 나의 모습을
보는 것을 견디기 힘들어하던 생생한 마음이 가슴한켠에 올라온다.
당시 나는 내가 좋아한다고 말하는 콘텐츠를 꾸준히 제작하지 않았다.
시간이 없다고 그럴듯한 핑계로 차일피일 미뤄놓은 상황속에서
나는 불현듯 그날 내게 신이 가르쳐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는 그때 알았다.
나는 남들에게 잘해보이고 대단한 일에 집착하고 있었다는 것을.
빛이 좋아 어둠을 외면하는 사람처럼
한편으로 어둠을 헤치는 빛을 맹목적으로 쫒아가고 있었다.
진짜 중요한 사실을 그때 난 몸으로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 나는 어둠이 있어야 빛이 있다는 사실을 완벽하게 느끼지 못했다.
과거의 내게 세상은 이분법적이었으며. 나는 그 중에 밝음을 담당하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어둠을 벗어나는 세상에 밝은 빛만이 될거라는 당연한 믿음을 가진채 나는 그렇게 세상을 편견으로 재단해갔다.
그래서 신은 내게 한아름의 꽃을 안겨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내 얼굴에 진흙을 바르고, 때론 어둠속에 나로 밀쳐내며, 냉철하게 발가벗은 나를 오랫동안 관찰하였다.
한번은 이런 과정들이 너무나도 속이 상해서 신과 함께 술을 마신적이 있다.
5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신은 힘들어서 울고 있는 나를 바라보며, 똑같은 어조로 이야기를 해주었다.
내가 가진 슬픔이 진짜 무엇을 의미하는지. 신은 어린아이를 가르치는 스승처럼 내게 이야기해주곤 했다.
그렇다. 신은 내게 그렇게 불편함을 주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에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
나는 아마 불편함이 가지고 있는 내면 깊이 진정한 향을 조금은 냄새로 알수있었다.
그래서 나는 신의 곁을 떠나지 않고 끝까지 그의 곁에 머물고 있었다.
그해 여름. 신과의 네번째 만남.
“자유리는 지금 하는 일을 왜 하시는 거에요?”
꾸준히 콘텐츠를 만들지 못해서 나를 만나러 온 그의 질문에
불안한 내 마음을 숨기지 못한채, 나는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이내 약한 내 모습을 보이기 싫어 빨리 대답해버렸다.
“그거야 당연히 좋아해서 하는 거죠.”
신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좋아한다라..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실수 있으신가요?”
“…저는 저를 잘 알아요. 확신이 들어요. 기분이 느껴지는게 있거든요.”
대답을 하면서 나는 뭔가 낯설지만 익숙한 기분을 느낀다. 그래. 초등학교 4학년때의 일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4학년 산수시간에 나는 무섭게 생긴 할아버지 선생님이 나를 칠판앞에 부른적이 있었다. 나에게 선생님은 구체적인 질문을 한가지 하셨고, 나는 철저하게 오답을 말하고 있었다.
무슨말을 하는지 모르는 횡설수설함 속에 친구들의 시선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등줄기에는 땀방울이 송송 맺어졌고, 허리를 타고 흘러가는 그 굴곡감이 느껴질만큼
나는 몹시 민감하게 그 상황을 이해하고 있었다.
나는 마치 그때의 4학년 어린아이가 된 것 같았다.
그렇다. 나는 분명 그때처럼 지금도 철저한 오답을 말하고 있었다.
“자유리는 똑똑한 사람이에요. 그게 자유리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똑똑한 내가 문제가 된다고? 아닌데 나는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인데.’
욱하는 마음과 함께 나는 신의 말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자유리. 지금 제가 하는 말이 잘 안받아들여지죠?
그럴실 겁니다. 자유리는 똑똑한 사람이 분명하니깐요.
똑똑하셔서 콘텐츠를 안만드시는 거에요.”
비꼬는 듯 해보이는 그의 말투의 반응보다 나는 그저 그의 속내가 더 궁금해졌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자유리 최근에 콘텐츠 계속올리고 계시나요?”
“요즘은 못올리고 있습니다..”
신은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제가 지난번에 와서 사람들을 실망시키라는 이야기 기억하시죠? 혹시 그것이 무언가를 안하는 실망은 당연히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시겠지요?”
“네. 당연히 아니지요.”
“이제 그 이야기를 좀 더 깊게 나눠볼때가 된 것 같습니다.”
신은 기다릴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차분하게 자신의 이야기로 우리의 대화를 이끌어갔다.
“저는 참 똑똑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중 한곳을 나왔고,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저는 탄탄대로를 달렸습니다. 저는 공무원이 되어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행정고시를 준비했습니다. 비록 시험은 실패를 했지만, 저는 머리가 좋다는 사실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그 무엇이든지 전부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현실에서 바라보는 나는 내가 생각하는 그것들을 전부 구현 할 수 있을것이라는 검증되지 않은, 아니 검증하고 싶지 않은 믿음이 있었습니다.”
신은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비참한표정을 드러내며 내게 힘주어 말했다.
“그런데 사실은 개차반이었습니다. 보험회사 영업을 할때의 이야기에요. 저는 정말 이것저것을 책을 읽으면서 공부하며 배워나갔습니다. 나름 유명한 저서를 읽어보고, 외우고, 공부하면서, 수백권의 책을 독파했습니다. 주변 그 누구를 가르쳐줄 정도로 말이죠. 저는 저 나름의 제 분야의 정교한 정답을 만들어갔지요.”
“책을 읽는 다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인가요? 많이 아는 것은 중요하잖아요.”
내가 반문하자 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수긍해주었다.
“맞아요. 많이 아는 것은, 책을 읽으려는 태도는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문제는 많이 아는 것으로 인해 내가 어떤 행동을 하게되는가 입니다. 저는 책을 많이 읽고 공부를 했을뿐, 현실감각과 현장력은 완전 엉망이었으니깐요. 제게 그 일을 알려준 사건이 있었습니다. 한번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훌륭한 세일즈 강사님 강연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모두가 존경하는 멋진 수업을 들을 기회가 생긴것이죠. 그런데 거기에서 제가 무슨 행동을 했는줄 아십니까?”
“그게 무엇이었는데요?”
궁금증이 올라와서 목이 말라짐을 느꼈다.
“저는 팔짱을 낀채로 수업시간 내내 강사를 평가하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이렇구나. 이 사람은 이정도 쯤이네. 이건 이 이론이잖아..이건 나도 알아. 누가 모르나..’
배우러 간 주제에 강사를 평가하느라 바빠 소중한 내 시간과 에너지를 잘못 쓰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렸지요. 당연히 저는 그 강연을 듣고 실행으로 옮긴것이 한개도 없었습니다. 다만 그 강사를 욕하기만 바빴지요. 강사비가 아까웠다고 울화통을 터트리며, 다시 책을 꺼내 들곤 했습니다. 그렇게 책만 많이 읽으니, 세상이 너무 만만해 보이더군요. 머리만 커져서 움직이지도 못하는 내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입니다.”
강사를 평가하고 있었다는 신의 과거가 나에게 무척이나 찔리는 내용이었다. 실상 요즘의 나도 그랬다.
누군가를 평가하기 바빠서 한가지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더 깊게 생각해보니 나는 누군가를 쉽게 평가함으로써 타인이 나를 이렇게 평가할까봐 너무나도 무서웠던 것인지도 모른다.
“자유리. 아마 자유리도 아는 것이 많겠지요. 책도 수백권도 읽고 자기계발도 좋아하는 사람이잖아요. 그러니 이 덫에 걸릴 확률이 높아요. 배운 만큼 콘텐츠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요. 정작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은 이것이어야 한다고 규정하는 그런 무서운 덫 말입니다.”
정곡을 찌르는 말 한마디에 나는 신에게 궁금증이 폭발되는 마음을 느끼고 있었다.
“맞아요. 저는 완벽해지고 싶어서 아니 조금 더 솔직하게.. 무서워서 콘텐츠를 만드는게 꺼려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제가 아는것이 많아서 평가하고, 그 평가한만큼 내가 만들지 못할까봐 두렵습니다. 신. 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신은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생각보다 오랜시간을 기다리는 듯 했지만, 나는 시선한번 돌리지 않은채 그 시간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때 알았어요. 제가 한참 그 강사분을 평가하고, 책에 빠져있던 어느날이었어요. 저는 아주 운이 좋게 사람들 앞에서 강연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지요. 저는 당연히 자신이 있었어요. 재테크 분야는 제가 엄청나게 책을 읽고 공부했던 부분이었으니깐요. 그리고 강연 전날 저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무엇을 보고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제 자신을 말이죠. 저는 사람들 앞에 나가서 이야기할 용기조차 없었습니다. 그래서 강연 당일에 핸드폰을 한 손으로 들고 그것을 보고 읽으면서 두시간을 넘는 강연을 진행했습니다. 믿기시나요? 수백명의 사람들 앞에서 핸드폰을 든 강사가 사람들을 쳐다보지도 않은채 화면을 읽고 있는 모습이.. 저는 나중에 그 재테크 강연을 하고 나서야 그 강사를 평가하던 저의 모습이 얼마나 바보같은 짓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답니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머릿속 똥을 쌓는 지식이 아니라 움직이고 깨닫는 경험이라는 것을 말이지요. 콘텐츠를 만드는 것은 그런 지식을 경험으로 바꾸는 절대적 행위입니다. 자유리는 지금 그런 경험을 쌓는 중인 것이구요.”
나는 신의 대답이 내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나는 20대에 영어가 좋아서 영어학원을 시작했지만, 영어학원의 현장은 완전히 달랐다.
좋아하는영어를 할수도 없었고, 현실의 벽앞에서 작아진 나를 수없이 발견한적이 있었다.
그랬다. 나는 행동하지 않고 있었다.
머리로 만들어진 가짜의 나는 그렇게 콘텐츠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었지만
정작 행동하는 진짜의 나는 온몸으로 거부하고 있었다.
“자유리. 사람들은 진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할때는 말이죠.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하게 되어 있어요. 그렇지요? 내가 좋아한다고 믿는 것을 1개월만 꾸준히 해보세요. 정작 좋아하지 않는 부분이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마치 스도크 아시죠? 그 원리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아닌 숫자를 점검해야지만 진짜 그 칸의 숫자를 찾는 게임 말입니다. 계속 콘텐츠를 만들다가 방향이 틀어지는 것은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을 가기위한 과정이 맞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내가 이것을 원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진짜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해야만 하는 것에 가까운 거에요.”
수첩을 다시 만져본다. 신이 내 옆에서 다시속삮이고 있는 것 같다.
내가 힘주어 적었던 노트 한켠에 별표 세개와 함께 이런 글귀가 눈에 보인다.
“좋아한다면 생각하지 않는다.”
그때의 내가 느낀 충만감이 글 한켠에서 손짓을 하고 있다.
신은 나를 기다려주었다.
기다려주는 그를보며 나 역시 보답의 마음을 담은 풍선이 날로날로 커지는 행복감이 밀려왔다.
그때의 나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신의 말을 따라 이렇게 성장하게 되었다.
수첩을 안주머니에 넣고, 나가면서 기분좋게 햇살담은 바람이 얼굴에 흩날린다.
좋아한다. 아니 행동한다.
머릿속에 알수없는 충만해짐을 느낀다.